학위논문 작성이란 감정이 극도로 소진되는 과정입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울지 않고도 이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많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때로는 저도 모르게 눈물부터 터져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저에게만 일어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 언니 역시 박사 과정 초창기에 첫 3~4개월에 최소 두 번 이상 울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건 아닌지라고 스스로 의심했다 더군요.
저는 박사과정이 제게 주는 무거운 감정적 돌덩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블로그에 쓴 ‘학위논문 예비 연구 계획서의 지옥(Pre-proposal is Hell)’편과 ‘장거리 달리기도, 단거리 달리기도 아니었다(Not a Marathon, Not a Sprint)’편 참고). 그래서 오늘은 허심탄회하게 제가 겪었던 감정을 꺼내 놓자 생각했습니다. 사실 전 박사논문을 준비할 때 정말 많이 울었고, 그렇게 우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걸요.
저는 이럴 때 울고 싶어집니다:
• 학위논문 계획서 작성에 대해 생각할 때
• 학위논문 계획서가 있는 파일을 볼 때
• 학위논문 원고 자체를 볼 때
• 학위논문 파일을 열어 볼 때
• 학위논문 내용을 써내려 갈 때
• 작성한 학위논문 파일에 저장 버튼을 누를 때
• 그리고는 그 파일을 닫을 때
• 논문 작업을 한 후 주변을 정리할 때
울고 싶은 이유는 대게 이렇습니다:
• 너무 지치고 더이상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이러한 생각은 심지어 제가 잠에 들 때에나 휴식을 취하는 순간에도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 박사논문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내 생각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 박사논문에서 다양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으나, 결국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는 공허한 생각이 들 때.
• 논문에 필요한 인용문헌들을 모두 다 찾아내 읽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 같은 기분인데,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 2년 전에 학위논문 제출을 위한 논자시(논문제출자격시험)를 치루었지만, 여전히 논문 심사를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 남편, 언니, PhD Project 식구들이 저를 지지해 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 학위과정에서 혼자라고 느껴질 때.
• 졸업을 해도 꿈에 그리는 교수라는 직업을 추구할 만큼 건강하지 못할까 두려움이 몰려올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렇게 눈물 한 바가지를 쏟아내고 난 후라도, 논문 작업을 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 이 학위 과정을 통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 얼마나 더 배울 수 있을지 기대되기 때문에.
• 세상이 왜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 내가 가진 질문에 답할 수 있을 유용한 도구와 기술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 사회와 세계의 본질에 대해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 그리고 이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 사람들이 얼마나 이상하고 불완전한지를 알아가는 것이 즐겁고, 그렇게 우리가 이상하고 불완전한 조직과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 이러한 (이상하고 불완전한) 조직과 시스템이 여러 세대에 걸쳐 어떻게든 그 기능을 (때때로) 유지해 나가는 지를 배우고 탐구해가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기 때문에.
하지만 무엇보다도, 박사논문이라는 힘든 과정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이유는, 이 과정을 통해 제가 진정한 사회 과학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확장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존의 방식을 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이해해 온 방식을 다시 구축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네! 눈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게 흘린 눈물이 그만한 가치는 있다는 것입니다.
Claudia González(@ScienceClau)는 워싱턴 대학 전략경영학 박사과정생입니다. 이 스토리는Claudia의 블로그 ‘난독증 박사(Dyslexic PhD)’ 에 게시되었으며 Claudia 의 동의를 받아 본지에 다시 게시되었습니다 (이 글에 해당하는 포스트는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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