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살 때 미국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면서, 한 주에서 다른 주로 건너가는 동안 많은 책을 읽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하나가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The Effective Executive)』였습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당신이 하는 업을 알아라(know your business)' 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석유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사실 에너지업계에 있는 것이다. 우편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커뮤니케이션 업계에 있는 것이며, 이메일의 영향력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술 출판 업계란 어떤 분야의 사업일까요? 콘텐츠 사업? 아닙니다. 저널은 어떤 분야의 사업일까요? 저는 저널이 하는 일은 단언/주장에 관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널은 ‘이 콘텐츠는 참신하고 독창적이기에 읽을 가치가 있다’, ‘이 논문의 저자는 다음과 같다’, ‘소속 기관은 다음과 같다’, ‘이 콘텐츠는 피어 리뷰를 거쳤다’, ‘이 통계는 결론을 뒷받침한다’ 등의 사항을 주장합니다. 잘 생각해 본다면, 저널이 하는 일은 콘텐츠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을 모으는 것입니다. 콘텐츠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주장입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주장은 저널 포맷에 담겨 있습니다. 저널이 ‘이것이 제목이다’ ‘이것이 초록이다’ 등을 분명하게 명시할 필요는 없지요. 이런 정보들은 저널이 사용하는 포맷에 녹아 나 있습니다. 지난 350년간 저널 포맷은 어서션을 전달하는 효율적인 방식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헨리 올덴버그의 <Henry Oldenburg’s Philosophical Transactions>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지니스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선, 잘못되거나 부정확한 주장을 만들어내기가 한층 더 쉬워졌습니다. 저널이 주장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오로지 포맷뿐이라면, 누구나 그 포맷을 복제할 수 있겠지요. 물론, 저널이 사용하는 것은 포맷이 전부가 아닙니다. 주장의 질도 중요하지요. 만약 오늘날 근거 없는 주장을 하게 된다면 Retraction Watch 등의 매체를 포함한 온 업계가 오류를 밝혀낼 것입니다. 이제 포맷은 어서션의 품질을 보증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해마다 연구에 지원되는 기금은 1.6조 달러에 달하고, 이는 1초에 5만 달러라는 금액입니다. 그렇기에 펀딩 기관은 연구의 결과물에 대한 더 나은 평가도구들을 원하게 됩니다. 그들은 더 높은 품질의, 정확하고 상세한 주장을 원합니다. 이러한 표명은 인간 뿐 아니라 기계도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어서션에 대한 신뢰도가 늘어난다면 연구 지원금으로 얻은 수익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널의 관점에서 이는 기회일까요, 위기일까요?
콘텐츠의 업무 흐름이 아니라 어서션의 업무 흐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저자는 저널에 투고하는 논문에 대해 다양한 주장을 하게 됩니다. ‘나는 저자이다. 다음은 나의 공저자들이다. 이는 내 연구에 기금을 지원해준 기관이다. 다음은 내가 사용한 방법이다. 이 데이터는 결과를 뒷받침한다.’ 등입니다. 저널이 하는 일 중 하나는 이러한 주장이 정확한지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저널의 자체적인 주장들이 뒤따릅니다. ‘이 연구는 피어리뷰를 거쳤다. 이 연구는 참신하다.’ 그 다음으로 저널은 이 주장들을 출판된 콘텐츠로 귀결시킵니다. 어서션의 과정이 포맷을 만드는 과정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때가 이 시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프로세스, 또는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업무 흐름의 인프라입니다. 어서션의 효율적인 태그가 업무흐름의 효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한다는 것입니다. Brown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봅시다. 이 단어는 대학교의 이름일까요? 사람 이름? 거리 주소? 이때 단순한 태그를 사용해 봅시다. 예를 들면 <b> Brown </b> 라는 명령어를 쓰면 소프트웨어는 이 단어를 볼드체인 Brown으로 출력해 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포맷에 불과하며 어서션을 전달하는 신뢰도 높은 방식이 아닙니다. Brown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author> Brown </author> 와 같은 시멘틱 태그(semantic tagging)을 사용하면 이제 Brown이라는 단어가 저자의 이름을 의미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집니다. 그러나 출판물마다 저자를 나타내기 위해 각기 다른 태그를 쓸 수 있기에 (예: Contributor, Author, Article Author)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저자를 태그하는 합의된 방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Document Type Definitions (DTDs)가 도입된 것입니다.
Journal Article Tag Suite (JATS)는 학술 저널 데이터를 태그하기 위해 합의된 DTD의 한 방식입니다. JATS를 사용할 때 소프트웨어는 이름에 걸린 태그를 읽어내 Brown이 저자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이때 포맷 ‘법칙’을 적용하기 위해 스타일 시트를 이용해서 저자 태그가 걸린 단어를 전부 볼드체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자라는 단어가 볼드체로 표기되고 원고의 올바른 자리에 위치하게 됩니다.
포맷은 제시하는 방식에 불과합니다. 포맷에 관해서라면 XML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단순히 포맷팅을 하는 ‘화려하고’ 편리한 방법이라고 치부하기엔 XML은 그 이상입니다. 예를 들면 XML을 사용해 저널은 모든 저자명을 푸른색으로 나타내는 식으로 스타일링 룰셋을 설정할 수 있고, 이는 변경 즉시 적용됩니다. 그러나 XML의 기능을 최대치까지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속적 식별자(persistent identifiers)를 사용해야 합니다. Brown이라는 이름을 가진 저자명에 ORCID를 적용해 봅시다. 이 경우, ORCID를 통해 소프트웨어에게 이 저널에 등장하는 Brown이 정확히 어느 저자를 가리키는지 알려줄 수 있습니다. API 통합을 사용하며 ORCID를 통해 이 Brown이 특정 저자임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숙련되지 않은 이용자가 XML을 짜기 위해 수동으로 ORCID ID에 접속한다면 XML 산출결과에 약간의 텍스트를 더하는 것 외에 어떤 아카이빙도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텍스트로 입력한 ORCID는 입증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ORCID ID를 XML에 추가하는 ‘올바른’ 방식은 API 콜을 이용해 ORCID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이용자들이 직접 ORCID ID를 유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저자가 소속된 기관을 쉽게 식별할 수 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자가 소속기관을 중국의 “동북대학교” 으로 입증할 수 있는데 이런 입증은 링골드 기관 식별자(Ringgold institutional identifiers) 를 통해 가능합니다. 이제 브라운이라는 저자가 중국 동북대학교에 소속되어 있다는 주장이 입증되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어서션은 연구투자금 흐름을 추적할 수 있기에 펀딩 기관 측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누가’ 연구를 수행했고 그들이 ‘어느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지만,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여기서 CRediT roles이 업무흐름 내에서 기여내용 및 기여도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Open Funder Registry식별자는 이 연구에 펀딩을 한 기관을 확인해 주고, DOI 링크를 통해 인용 사항 역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호 연결된 어서션의 로직이 저널 업무흐름의 다양한 측면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저널의 업무흐름 중 피어 리뷰를 살펴봅시다. Editorial Manager와 같은 피어 리뷰 시스템에는 저널의 주장을 창출하고 확인할 수 있는 지원 도구가 있습니다. ‘이 콘텐츠에 표절 사항이 있는가? 콘텐츠는 참신한가?’ 는 Similarity Check, Meta 로 확인할 수 있고, ‘인용이 정확한가?’는 Reference linking 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이해관계 충돌의 여지가 공개되었는가? 통계가 정확한가?’ 는 StatReviewer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어서션이 한 번 창출되면 리뷰어 검색, 리뷰어 활동 인정, 그리고 APC 추정 및 처리 등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로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가치 있는 주장이 이루어지면 여러분의 콘텐츠가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콘텐츠가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세계에서 어서션은 출판사가 가치를 더하고 이익을 창출하는 기회를 보여줍니다. 오픈엑세스, 오픈사이언스의 성장은 이러한 지점을 강조하며 저널들이 ‘잘 팔리는 콘텐츠’이상의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콘텐츠 기반의 업무흐름에서 어서션 기반의 업무흐름으로 전환할 필요가 생겨납니다. 저널의 피어 리뷰 시스템은 지속적 식별자 및 분류체계와의 통합을 통해 출판사가 성장하고 어서션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어서션 관리 시스템입니다. 앞으로 출판사의 마케팅 부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최고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최고의 어서션’을 창출한다는 쪽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출판사들이 업계의 가슴 뛰는 변화를 그 어느 때보다 마음 깊이 이해해야 하는 때입니다. 1981년, 길 위에서 읽은 피터 드러커의 책이 준 교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의미 깊게 다가옵니다!
*이 기사는 2016년 Editorial Manager 사용자 그룹 미팅에서의 발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영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