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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논문’을 쓰지 않아도 될까? ‘좋은’ 논문으로도 충분한 걸까?

Dr. Clarence | 2025년4월17일 | 조회수 575

먼저 고백부터 해야겠네요. 저는 최고의 논문을 쓰지는 못했어요. 쓰고 싶었지만요. 논문에서 틀린 부분도 있었고, 데이터 분석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이룬 성과에 뿌듯하고, 세 명의 전문 심사자에게 받은 긍정적인 평가도 (대체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다소 관대했고, 시간을 더 들이거나 더 많은 자료를 읽거나 혹은 초안을 더 열심히 쓰거나 더 노력했다면 더 나은 논문을 쓸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저는 최고의 논문을 작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심사자들이 읽은 논문 중 최고의 논문이길 바랐습니다.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평을 듣고, 그 논문을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의 동료에게 보내 동료의 칭찬과 함께 출판 제안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논문을 쓴 결과, 저는 졸업을 할 수 있었죠. 4월의 어느 화창한 날, 제 어머니와 남편, 아이들, 친구들이 저를 지켜보며 응원을 보냈습니다. 심사자들로부터 받을 만큼의 칭찬도 들었고, 제 지도교수님도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타이틀도 얻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많은 걸 얻었습니다. 하지만 책 제안도 받지 못했고, ‘지금껏 읽은 논문 중 최고예요!’라는 코멘트도 받지 못했어요. 상이나 표창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모든 사람에게 칭찬은 많이, 수정 요청은 조금만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최고의 논문’을 쓰는 게 목표가 아니라 연구를 하고 학위도 받고 학계에서 경력을 쌓는 게 목표라고 말이죠.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논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가슴 한쪽에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최고가 되고 싶었어요. 저는 학교에서도 우수한 학생이었고, 상도 여러 개 수상했으며, 늘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생, 대학원생이 되면서 자신이 커다란 연못 속 작은 물고기라는 점을 깨닫고는 욕심을 다소 누그러뜨렸습니다. 최고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우수한 결과를 낼 수는 있었습니다. 새로운 마음가짐에 대체로 잘 적응했죠. 석사 과정을 마치고 5년을 쉰 다음 2010년, 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나이가 더 든 만큼 스스로가 예전보다 더 현명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고가 아니면 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다시 슬금슬금 올라오더군요. 

이러한 동기 부여는 유리하게도, 불리하게도 작용했습니다. 풀타임으로 일하고 생활하며 시간을 쪼개 박사 과정을 밟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들의 학업에 신경 쓰며 남편과 시간을 보내고, 마감일이 다가오는 환경에서 자료를 읽고 논문을 쓰고 또 고민한다는 건 너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최고가 아니면 의미 없어’라는 생각은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할 때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냥 낮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이 동력으로 버틸 수 있었어요. 

하지만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든지 아니면 망치지’라는 사고방식은 제가 놓치거나 잘못한 것,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자축하지 못했죠. 이 사고방식은 소소한 성공을 축하하고 이것을 큰 성과로 인정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제 글과 연구는 최고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냥 괜찮거나 우수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최고가 되어야 했고, 다른 이들도 저를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내 논문은 엉터리라 어차피 아무도 읽지 않고 인용도 하지 않을 텐데,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바보 같다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말이에요, 저만 그런가요? 아닐걸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무언가를 정말 잘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을 정말 잘했을 때 혹은 최고가 되었을 때 따라오는 인정과 평가를 좋아하게 될 겁니다. 뛰어나거나 최고가 되지 못한다는 건 외부로부터의 인정도, 평가도 줄어든다는 뜻이므로 견디기 어려워지죠. 그만큼의 인정을 내면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러한 자기 믿음을 지속적으로 채워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타인이 나에게 뛰어나고, 훌륭하고, 우수하다고 말해주면 도움이 되긴 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그저 친절하기만 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아는 것도 도움이 돼요. 인정과 평가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전진하기 위한 동력으로 삼으려면 스스로가 똑똑하고 유능하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칭찬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사람들은 나에게 칭찬하는데 정작 자신은 내 글이 엉터리라고 생각한다면, 타인의 칭찬은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칭찬보다는 비평에 귀를 기울이고 글쓰기 슬럼프와 싸우는 와중에도, 저는 제 논문이 최소한 괜찮다고, 일부는 훌륭하다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어떤 부분은 그 이상으로 뛰어날지도 모르죠. 제 논문은 훌륭합니다. ‘최고의 논문’은 아니지만, 이를 읽은 동료들이 좋아했고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일이죠. 저는 열심히 노력해서 박사 학위를 얻었습니다. 이것도 꽤 대단한 일이죠. 저는 논문을 쓰고 있고, 수정과 보완을 거치면 출판될 겁니다. 역시, 대단한 일입니다. 

최고가 된다는 건 (1) 가능하지 않고 (2) 그다지 권장할 만한 일도 아닙니다. 결국 너무 큰 부담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비현실적인 기준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 가장 높은 지점에서 시작하여 점차 내려가는 것보다는, 한 장씩 쓰면서 매일 더 발전하고 다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박사 학위는 학자로서의 경력을 쌓는 토대의 일부일 뿐, 사실 경력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을 학자로서 평가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바꾸려 한다면 논문을 쓸 수도 없습니다. ‘최고의 논문’이 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마비되고 말 겁니다. 하지만 좋은 논문이 될 수는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박사 과정의 세계에서는 ‘좋은’ 논문으로 충분하며, 박사 논문 하나에 학문적 자아와 경력을 모두 담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탄탄한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는 사실을 깨닫고 계속 기억하는 겁니다. 

 

* 상기 아티클은 셰런 클라렌스(Sherran Clarence) 박사가 2015년 8월 28일, 자신의 블로그 ‘How to write a PhD in a hundred steps (or more)’에 올린 을 재가공하여 에디티지 인사이트에 업로드한 영문 아티클을 국문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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