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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지지만 부러지지는 않는다

로즈 페레이라 | 2018년12월31일 | 조회수 2,864
시리즈 기사 연구자 스토리
구부러지지만 부러지지는 않는다

때는 2008, 저는 뉴욕 맨하탄 다운타운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열차를 타려고 기다린 것이 아니라 앞에 뛰어들기 위해서였습니다. 날은 저의 오랜 육체적, 정신적, 금전적, 성적 학대가 이제 끝난다는 확신을 품고 들어갔던 가족 법정에서 패배를 맛보고 지쳐 나온 날이었습니다. 그곳에 서서 지옥을 끝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엄마 없이 자랄 소년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는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인생에 이보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당시 삶의 줄기 빛이었던 어린 아들은 제가 감히 누군가의 개인용 샌드백 이상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저를 응징하는 이용되었습니다. 대의 열차가 지나간 저는 정신을 차렸고 뒤돌아 걸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고향인 도미니카 공화국과 미국 사이에서 인생 절반을 살며 소위 말하는 여성으로서의 '의무'들과 사회의 모순이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저는 제가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애정 결핍으로 인해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백해무익한 관계에 빠져들었고 결국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아이와 가까이 있기 위해, 그리고 누일 자리만이라도 얻기 위해 가난과 절망에 굴복한 저는 학대자의 집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야만 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저는 우리 가족 중에 최초로 폭력적인 배우자에게서 벗어난 여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체성의 핵심에는 항상 과학이 있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번도 채워진 적이 없는 욕구가 결국 제게는 불안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자라면서 과학을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과학이 무엇인지, 저의 꿈에 이름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무엇이든 작동 원리를 알아내는 집착했고 판에 박힌 표현처럼 들리겠지만, 우주에 나가는 것을 꿈꿨습니다. 우주에 가는 것이 가능한지도 몰랐고,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있는지도 몰랐지만 저는 매일 하늘을 올려다보며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저는 남들이 기대하는 내가 되기 위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폭력적인 관계를 끝내고 세상에 나와 제가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 부닥쳐있는지를 깨닫고 , 저는 인생을 더는 변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사회를 이해하고 있지 않으며 '전통적' 삶의 방식을 따를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히 꿈을 꾸기 위해서 생존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일단 사회로 나와 자신을 찾으려 노력하다 보니 나라에서 저는 많은 사람에게 그저 히스패닉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폭력 가정 출신의 미혼모. 많은 미국인이 존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이용해 발짝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고정관념을 깨야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그대로 맨해튼 기차역에서 자며 아이의 양육권을 얻기 위해 싸우던 시절 어느날, 깔고 자던 신문지에서 가정방문요양사로 '공짜' 트레이닝을 받은 나중에 일로 갚을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같이 기차역에서 자고 공중 화장실에서 씻은 매일 교육을 받으러 갔고 한달이 지나 프로그램은 끝났습니다. 트레이닝 우리는 매일 수술복을 입어야 했는데, 옷값은 교육이 끝나고 나서 갚을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매일 입을 옷이 있다는 것이 정말 행운이었지요.

드디어 저는 6, 12시간동안 시급 7.25달러를 받으며 가정방문요양사로 일하며 칸을 얻을 있을 만큼 돈을 모았습니다. 근무 시간 때문에 힘들고 지치기도 했고 근무 환경이 위험한 경우도 많아 여러 몸을 다치기도 했습니다. 버는 돈은 거의 없는 데다,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뿐 아니라 법정에서 만나는 타인들까지도 엄마로서의 자격을 항상 공격해오고 있었으며, 항상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일하는 것이 저에게는 역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매일 과학을 공부하는 날을 꿈꾸었습니다.

물론 어떻게 하면 과학을 공부할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법정 조정이 끝나고 결국 양육권과 더불어 양육권을 공유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 또한 되찾은 , 저는 돈을 많이 벌어서 학교에 다닐 있는 길로 진로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간호조무사가 되었지만 급여가 크게 오르지는 않았고, 오히려 학자금 때문에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잠깐이지만 저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제가 아는 분야인 의료 분야에 머무르기로 마음을 정했었습니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있도록 의대에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전에 의과 대학 지원서들을 관리했던 적이 있는데, 같은 사람이 무조건 우선순위 혜택을 받을 있는 사립 대학을 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최소 생계에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계산해 후에 아이디어는 포기할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저는 의학이 아니라 과학 분야에서 알맞은 비용으로 교육을 받을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의료 분야에서 돈으로 과학 경력을 쌓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포기해 보려고 번이나 노력해 봤지만,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 때문에 제가 살아갈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는 것이 쉬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가난했고 아이를 키우고 있었으며 혼란한 와중에 저는 막내 딸아이를 신경관결손으로 먼저 보내야 했습니다. 저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사실을 고통스럽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잠을 없었고 몸은 스스로 등을 돌려 자가 면역이 발병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저는 포기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과학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미 인생에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했으니까요. 화가 나서, 반항심에, 그리고 사랑 때문에 저는 포기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공공 기관을 발견했고 그저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저 문을 열고 들어가서 과학에 관해 물어보고 조언을 얻을 것이라 기대했던 제가 순진했지요. 그곳에서 얻은 것은 낙담뿐이었습니다. 그곳은 제가 소위 말하는 '전통적인 학생상' 아니라는 이유로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타고난 사람인 것처럼 대했습니다. 패배에 질려있던 저는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등록을 강행했습니다. 처음으로 생물학 강의실에 들어선 저는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저에게는 작은 승리 같은 날이었습니다.

고된 여정이라는 표현도 모자라게 느껴지지만, 결국 열심히 노력한 끝에 저는 아들과 함께 안정적인 삶에 '정착' 있게 되었고 동시에 풀타임으로 우주 생물물리학을 공부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2017 1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모든 것이 잠시 정체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사고 때문에 잠시 일과 공부를 병행할 없게 되었고 삶은 180 달라졌지만,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17 , 재활하는 동안 정신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될까 싶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트위터 계정을 열었습니다. 과학과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제창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STEM에서 유색인종 여성 대표의 중요성을 대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전통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이들에게 부여되는 많은 고정관념을 깨부수려고 합니다.

온라인뿐 아니라 STEM 내에서도 반대에 부닥쳤고, 저와 같은 생존자들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에게서조차 항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배경 때문에 능력이 절하되고 가치를 간과 당하지 않도록 삶이라는 예를 널리 알릴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이 걸림돌이 되거나 차별의 도구가 되지 않고 사람들을 고무시키는 역할을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압니다. 어쨌건 저의 유일한 초능력은 끈기이니까요.


*편집 노트열정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연사, 그리고 교육 활동가인 로즈 페이라(@_Astro_Nerd_) 고무적이고 감동적인 글을 통해 인생에서 가장 고되었던 시절을 돌아보았습니다. 과학자의 꿈이라는 위험천만한 역경의 위에서 과학에 대한 열정을 통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있었던 이야기도 들을 있습니다.  글은 2018 10 23 로즈 블로그 게재되었으며 허가를 받아 이곳에 재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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