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 특집기사] 수십 년 전만 해도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학계에 여성들이 존재감을 드러낸 지는 오래지 않습니다. 생명과학이나 심리학 분야에서 여성의 입지는 상당히 크지만, 정치학, 물리학, 그리고 철학 분야에서 여성은 아직 과소평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여성의 주변화(marginalization)에 내재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국 일리노이 주 어바나 샴페인 대학 심리학과 안드레이 심피언(Andrei Cimpian) 교수,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 철학과 새라 제인 레슬리(Sarah-Jane Leslie) 교수가 최근에 발표한 “학계의 젠더 분포에 내재된 재능에 대한 기대” 라는 연구에서는 성공을 위해 타고난 재능의 역할을 강조하는 문화를 가진 분야는 노력의 역할을 강조하는 분야에 비해 여성의 수가 적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심피언과 레슬리는 각 학문 분야마다 두각을 드러내는 여성의 수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알아차린 뒤 학문 분야에서 여성이 격하되는 양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철학 분야에서 여성 박사의 수가 35퍼센트 미만인 것에 비해, 심리학 분야에서는 박사의 70퍼센트 이상이 여성입니다. 흥미롭게도, 철학에서는 “타고난 재능”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심리학에서는 성공의 중요한 요건으로 노력과 헌신을 꼽는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이렇게 왜곡된 성비가 앞서와 같은 믿음에 기반해 있는지의 여부를 알기 위해 이들 연구팀은 미국 9개 주요대학의 STEM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및 사회과학, 인문학 분야의 30개 전공에 소속된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교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습니다. 이들의 가설은 수학과 물리학 등 “천재성”을 강조하는 전공은 노력을 강조하는 분야에 비해 여성의 수가 적을 것이며 이는 학문 커리어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만큼 똑똑하지 않다는 편견에 의거한다는 것입니다.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자신의 전공에서 성공하기 위해 “타고난 재능”, “학습으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적성” 이 “동기부여와 꾸준한 노력”의 가치에 비해 갖는 중요성에 점수를 매겼습니다. 이 조사 결과에는 여성과 여성의 지성에 대한 문화적 편견의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연구 결과의 주요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화적 편견은 적성보다는 태도에 대한 것
연구자들은 여성에 대한 과소평가가 다른 요인들보다는 재능의 필요성에 관한 믿음과 연관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여성들이 다양한 학문적 취향을 가지고 있고, 추가근무를 원치 않으며, 특정 분야에 진입하기 위한 백분위를 달성하지 못했으며, 추상적 사고보다 정서적 이해에 능하다는 점 등 역시 고려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이 여성의 학문적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기에 이러한 설명들은 기각되었습니다. 저자들의 분석은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받는 평가는 실제로 필요한 지적 수준보다는 해당 분야가 투사하고 있는 재능에 대한 기대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적성보다는 태도가 편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문화적 편견에는 소수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 연구에서는 학계에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는 한편으로 같은 편견이 소수자에게도 확장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아시아계 미국인보다 STEM 분야의 직업에서 과소평가된다는 점에서 학계 내의 문화적 편견의 증거가 실재하는 현상이라는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문화적 편견이 여학생들의 커리어 선택을 좌우
심피언과 레슬리는 여성에 의한 편견이 교직원 및 대학원생 강사들로부터 시작해 학부생들에게로 옮겨간다고 지적했습니다. 여학생들은 이러한 편견을 내재화해 커리어 선택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통념으로 인해 이들은 노력보다 재능을 강조하는 분야로 진출할 의욕을 잃어버리기에 그 결과 젠더의 불균등한 분포가 일어납니다. 이 연구의 주저자인 레슬리는 기자회견에서 대중문화를 예로 들며 젠더에 따른 지성에 결합된 편견을 설명했습니다. 셜록홈즈나 닥터 하우스는 타고난 천재인 반면 J.K.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똑똑한 여성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는 성공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것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러한 편견은 여성들의 자기 확신을 어렵게 하며 따라서 커리어 선택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가 젠더 편향으로 이어지는 다른 요소들에는 충분히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시카고 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이자 학계 내 젠더 편견을 다룬 연구의 저자이기도 한 루이지 진갈리스(Luigi Zingale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자들이 전개한 가설은 옳을지 모르나, 해당 분야가 경쟁이 심하고 여성들이 경쟁을 꺼린다는 가설 역시 동등하게 유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연구의 결과가 학계에 팽배한 편견과 이를 알릴 긴급한 필요성을 보여준다는 점에는 동의했습니다.
여성들은 열의를 가지고 학계로 진출해 다양한 분야에서 유의미한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편견에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여성들이 남성 위주의 학계에서 커리어를 유감없이 펼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자들, 그리고 사회 전체의 태도 변화가 절실히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