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인터뷰는 연구자들을 위한 ‘학계 밖 경력 탐색’을 주제로 다양한 전문가와 만나고, 학계 밖의 직업과 커리어 전환 여정을 탐구하는 시리즈 기사입니다.
김포닥 님은 토목환경공학 학사 및 박사를 졸업한 후에 기계공학 박사후 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웹툰 회사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대학원 및 진로와 관련된 유튜브 채널(채널명: 김포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안녕하세요, 김포닥 선생님! 반갑습니다. 데이터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당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을 꼭 인터뷰하고 싶었습니다 :-) 게다가, 비전공자로서 데이터 분야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점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합니다.
먼저, 학문, 비학문 트랙을 모두 포함한 직업적 여정과 학계 밖에서 이루어진 커리어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커리어를 바꾸게 된 계기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대학원 및 박사후 연구원 생활과 창업 및 취업 생활을 모두 경험해 봤습니다. 처음엔 막연히 전문가가 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할수록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세상에 좀 더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박사를 수료한 상태로 구조해석 소프트웨어 회사에 취업을 했었습니다.
대학원에서 연구하던 것을 회사에서 거의 그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첫 회사에 오래 있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문화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건설 분야는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어 새로운 기술을 적용할 기회도 적고, 일도 수직적으로 진행되는 편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문화가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과 조직 문화에 대한 갈망으로 첫 회사를 나오고 나서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음악을 듣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음악 시장의 쏠림 현상을 해소해 보자는 꿈을 안고, 음악과 컴퓨터 코딩이 연관된 음악 추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대학원에서 슬쩍 접해보기만 했던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 기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로만 다루던 다양한 알고리즘들을 이용하여 실제 상품을 만드는 일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즐겁다고 해서 사업이 잘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창업을 접고 다시 대학교로 돌아가 학위 과정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창업 실패에 대한 주눅과 고생하며 받은 박사 학위로 인해서 저는 한 번 포기했던 교수라는 직업을 다시 목표로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제가 있어야 할 곳은 학계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때 웹소설 작가를 꿈꿨을 정도로 좋아했던 콘텐츠에 대한 일을 찾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글로벌 웹툰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다시 돌이켜보면 커리어를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여 가면서, 저에게 맞는 환경과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무척 다양한 시도를 해오셨습니다. 이러한 커리어 전환에서 도움이 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또, 어떤 도전에 직면하셨나요?
역설적이게도 커리어 전환에 도움이 된 것은 한 분야를 깊게 공부해 본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주로 대학원 기간 동안 수치해석 분야를 연구했는데, 처음에는 오래된 포트란(Fortran) 코드를 매틀랩(Matlab) 코드로 변경하기 위해 매일 밤을 세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포트란 코드를 이해하기 위해 핵심 알고리즘이 정리된 한두 편의 논문을 거의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처음에는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던 수식들과 코드들이 이해되기 시작했고, 논문을 보는 것이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3년이 더 지났을 무렵에는 논문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았고 새로운 전문 지식들도 예전보다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업을 하기 위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도 저는 논문을 먼저 보기 시작했고, 알고리즘의 근간이 되는 기본 내용과 파이썬(Python) 코드들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동안 쌓아왔던 공부 습관이 제가 정말 배우고 싶은 분야를 만났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직무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커리어 전환의 가장 큰 벽은 ‘과연 내가 다른 분야의 일을 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박사를 졸업하면서, 사실 제가 가장하고 싶었던 것은 인공지능과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박사 학위 전공은 토목환경공학이었기 때문에, 시도해 보지도 않고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포기하고, 기계공학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하게 되었는데, 비슷해 보이는 토목환경공학과 기계공학에서도 꽤 다른 전문 지식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전문 지식들을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분야로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신감이 생기자, 놀랍게도 저에게 데이터 과학자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결국 제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Q. 새로운 분야에 대한 커리어를 꿈꾸는 연구자 분들에게 용기가 되는 경험입니다. 현재 일하고 계신 영역에서 석박사 과정 학생들과 연구자가 탐색할 수 있는 직업 기회 유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현재 데이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데이터 관련 직무의 관심도가 많이 올라간 것 같습니다. 데이터 관련 직무를 필요로 하는 회사도 많아지고, 이 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는 취업준비생 분들도 많아진 것 같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대학원 과정에서 논문이나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자료를 분석하고, 그래프를 그리는 경험이 데이터 관련 업무를 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활용됩니다. 또 학회에서 혹은 교수님들 앞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연구 내용에 대해 토론했던 경험은 분석된 데이터를 다른 팀원들에게 전달할 때에 큰 도움이 됩니다.
결국 데이터를 분석한다는 것은 새로운 패턴을 찾아내고, 그 패턴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인데, 이 업무가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결국 대학원에서의 연구 경험을 통해, 데이터를 보다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수치적으로 보여 줄 수 있게 됩니다.
데이터와 관련된 직무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데이터 엔지니어나 머신러닝 엔지니어처럼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과 코딩 실력이 필요한 직무와 데이터 분석가 및 데이터 과학자와 같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리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직무가 있습니다.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직무는 IT와 관련이 없는 분야의 연구를 했더라도, 대학원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데이터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도메인 즉, 분석해야 하는 데이터에 대한 흥미나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웹소설 및 웹툰과 같은 콘텐츠를 좋아했기 때문에 회사에 입사하여 콘텐츠와 관련된 데이터들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부분이 잘 맞지 않는다면, 초반에 새로운 것들을 습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SQL이나 파이썬 같은 코딩 언어를 다룰 수 있으면 좋습니다. 요즘엔 데이터 분야에서도 GA(Google Analysis)와 같은 BI(Business Intelligence) 툴이 많이 나와서 툴 사용법만 익히면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지만, 전문적으로 깊게 파고들기 위해서는 툴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데이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코딩에 관심이 있다면, 제가 데이터 엔지니어링 및 머신러닝 모델 구축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처럼, 특정 전문 지식이 필요한 분야에도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습니다.
Q. 데이터 분야의 전반적인 직업군과 정보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석박사과정 학생이나 연구자들이 학계 밖의 진로를 탐색할 때에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점 몇 가지를 조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대학원 졸업을 앞둔 학생이나 박사후 연구원분들에게 항상 학계뿐만 아니라 학계 밖의 진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학계 안에 있을 때는 느끼기 어려울 수 있지만,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본다면 학계는 생각보다 좁은 곳입니다. 학계 밖 세상에는 훨씬 다양한 일들이 있고, 어쩌면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일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학계 밖에 진로를 탐색할 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자신의 흥미가 무엇인가?
학계 밖의 진로를 고려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취업 분야에 대한 흥미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에서는 좁은 분야를 깊게 연구하기 때문에, 연구 분야와 취업하려는 회사의 분야가 비슷하더라도 그동안의 전문 지식이 취업 후에 직접적으로 활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일을 하려면 대학원 기간과 상관없이, 거의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합니다.
대학원 기간이 길고 연구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력직으로 취업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회사에서 원하는 높은 능력을 맞추기 위해 더 빠른 적응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흥미가 매우 중요합니다. 대학원을 졸업한 시점에서는 어느 정도 새로운 전문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흥미를 더한다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분야도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토목환경공학과를 나와서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현재 웹툰 회사에서 데이터과학자로 일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2) 글쓰기 능력을 요구하는 곳인가?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의 강점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글을 더 많이 써보고 자료 정리를 많이 해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사나 특정 직무에서 글을 쓰거나 자료를 정리하는 일의 중요도가 높을수록 대학원의 경험이 큰 힘이 됩니다. 연구를 하는 회사나 직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업무 내용을 정리하고 문서로 남기는 일은 거의 모든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합니다.
다만, 그 중요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학계 밖의 진로를 생각하는 경우에는 글쓰기의 중요도가 높은 곳이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자료를 정리하는 업무 자체가 자신과 맞는 일인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잘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일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커리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3) 어디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마지막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계 밖의 진로를 고민하고 계신 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은 진로의 범위를 스스로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도 처음에 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취업을 고려했을 때, 제 진로를 전공과 관련 있는 분야로 한정 지었었습니다. 그 때 취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곳은 학계, 국가 연구소, 기업 연구소였습니다. 그 중에서 학계가 저에게 맞을 것 같아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결국 그 길은 저에게 맞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 전공과 상관없이 제가 하고 싶은 분야의 회사를 찾았고, 제 경험을 필요로 하는 회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에서 연구했던 전공 지식이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더라도 그 경험을 필요로 하는 회사들은 꽤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제약도 없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진로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그 진로가 학위 전공과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길은 남들이 정해 놓은 길이 아니라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커리어 여정을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학계 밖의 커리어를 꿈꾸는 연구자 여러분들, 인터뷰 기사 댓글을 통해 더 궁금하신 점이나 앞으로 다루었으면 하는 분야에 대해 알려주세요. 에디티지 인사이트가 찾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