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인터뷰는 연구자들을 위한 ‘학계 밖 경력 탐색’을 주제로 다양한 전문가와 만나고, 학계 밖의 직업과 커리어 전환 여정을 탐구하는 시리즈 기사입니다.
유기화학자인 윤정인 대표님은 벤처 창업가로서 신약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리윤바이오를 설립하고, 현재 공동대표이자 CTO로 일하고 있습니다.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이사 및 젠더다양성 위원회 부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윤정인 대표님, 인터뷰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대표님의 직업적 여정과 학계 밖에서의 커리어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커리어를 바꾸게 된 계기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석-박사 과정동안 연구원에 소속된 학생연구원 신분으로 공부하는 제도를 통해 공부를 했습니다. 학문 트랙으로 치면, 정부출연연구소 소속 연구원이었던 셈입니다. 이후, 박사학위 심사에 통과한 뒤, 제가 갈 수 있는 길은 학문 트랙으로는 현 기관이나 타 기관에 박사후 연구원이 되는 경우가 있었고, 그 외 취업이 가능했습니다. 저는 1차적으로는 취업을 고려했고, 2차로는 당시 재직하던 기관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신분 변경을 통해 있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취업으로 목표를 정했던 이유는 아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민을 할 당시, 아이는 만 7개월 정도였고, 졸업할 즈음 만 11개월이었기 때문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본격적인 학문 트랙으로 입성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배우자는 저로 인해 자신의 삶이 흔들리는 것이 싫다는 입장을 밝혔었기 때문에 온전한 지지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보통 포닥을 가면 해외 이주를 할 가능성이 높아 배우자가 매우 반대했습니다.) 아이로 인해 분명 연구에 매진이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 제가 학문트랙에서 벗어나 취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취업 후에도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여성 박사로서 취업 과정에서 무시를 당하거나,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은 일이 많았습니다. 아이는 다른 데에 맡기고 연구만 할 수 있겠느냐, 남편보다 월급이 적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 남편이 당연히 박사를 했을 것이라고 여기며 묻는 질문, 아이가 있어서 출장 못 다니겠다고 선을 긋는 태도 등, 지금 생각하면 모욕적인 경험인데, 당시에는 취업이 절실하여 그렇다는 생각도 못했고, 일단 뽑아주는 회사를 고민하지 않고 입사했습니다.
회사 입사 이후에도 딱히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입사 이후에 동일 전공자인 남편을 스카우트하여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남편과 저를 비교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저는 계속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기분이라 우울한데, 그와 달리 남편은 잘 나가는 것을 보며 더 힘들었습니다. 내가 없어지거나 저 사람이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울감이 심했었고, 저는 여자라 가장이 아니니 퇴사해도 괜찮은데, 남편은 가장이니 퇴사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결국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그 말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의 분함이 지금이 저를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사업을 하는 제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말이기도 합니다.
퇴사 후 이직을 할 때에는 처음부터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연봉을 포기하고 시간적 여유가 많은 초기 스타트업에 입사를 했습니다. 사실 아이가 있어도 괜찮다고 대답해준 곳으로 가느라, 부실 기업인지 잘 알지 못한 채 입사를 했습니다. 이후에 회사는 경영 악화로 폐업을 했는데, 그나마 스타트업에서의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회사를 시작하고, 창업 2년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학문적 영역에서 성공할 자신이 없었던 시기 여러가지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감이 높아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혼자 집에 있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그 덕분에 시민단체와 인연이 닿아 비영리 단체 두 곳에서 여성노동 운동, 환경운동, 과학기술계의 다양성 의식 재고 등과 같은 활동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우울감을 털어내기 위해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브런치에 연재했던 엄마과학자생존기, 그리고 지금은 브릭에서 엄마 과학자 창업 도전기를 연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고군분투하면서 기회가 생겨 모교에서 강의 전담 교수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Q.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셨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커리어 전환에서 도움이 된 것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학계에 남아 교수가 되는 트랙을 제외하고, 그 주변에서 하게 되는 일은 거의 다 경험한 것 같습니다. 저에겐 엄마와 과학자라는 두개의 직업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도전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도전 중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엄마가 과학자로 살기 위해서는 여전히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 커리어를 쌓으려면, 아이와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아이와의 시간과 커리어를 함께 지키려면 건강을 포기해야 합니다.
저는 커리어도, 아이와의 시간도, 그리고 제 건강도 놓을 수 없어 연봉을 포기하고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선택했었습니다. 스타트업 합류에 처음 도전하던 때, 그리고 창업에 이르게 된 지금까지 도전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생존을 위한 제 열망이었습니다. 커리어, 건강, 엄마로의 삶 모두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생존하기 위해서 도전은 필수적이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 놓일 때 저에게 위로가 되 주었던 것은 박사과정 지도교수님께서 해주셨던 이야기입니다
"박사란 어떤 과정의 처음과 끝을 경험해본 사람이란 뜻이다. 한번 끝을 본 사람들이니, 새로운 일도 끝을 볼 생각으로 도전할 수 있을 것이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노력하는 사람은 있다. 그러니 너도 노력해라. 박사도 했는데,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항상 이 이야기를 되새기며 뭐든 되겠거니 생각하고 잘 버티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커리어 전환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선택지는 별로 없었으니까요.
Q.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연구자 분들에게도 용기가 되는 말이네요.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일하고 계신 영역에서 석/박사 과정 학생들과 연구자가 탐색할 수 있는 직업 기회 유형은 어떤 것이 있는지도 조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일하는 영역에서 석/박사 과정 학생들과 연구자가 탐색할 수 있는 직업 기회는 굉장히 다양할 듯 합니다. 과학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대중과학 연구가 혹은 저술가로서의 기회도 있고, 최근 등장한 과학커뮤니케이터라는 직업군도 누구보다 학위 과정 학생들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전공의 대중 과학 저술가가 나온다면, 더 많은 유익한 정보가 대중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겁니다. 과학전시기획도 석/박사 과정 학생들과 연구자가 도전할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박물관이나 과학관에서의 과학 전시는 특정 영역 전공자들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처럼 창업을 하거나, 신약개발 관련 회사에 취업하여 기업 소속 연구원이 되는 것 역시 학문 트랙 밖의 직업 기회이기도 합니다. 기업은 과학적 사실 규명보다는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더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합니다. 이런 분야에 미리 인턴 등의 경험을 해보며 경력을 쌓는 것도 좋습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전문가를 교원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 기업 이력이 많은 경우, 저처럼 강의전담교원으로 요청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구를 전담으로 하는 교원이 아닌, 현직자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새로운 영역을 알려주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트랙으로는 신약 분야에서는 임상서류를 전담 작성하는 인력으로 성장할 수도 있고, 석박사 출신의 기술평가사 (특허 가치 평가) 혹은 특허 담당 변리사, 특정 전문 영역의 VC (예: 벤처 캐피털에 근무하는 바이오 분야 전문 심사역) 등으로 성장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런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Q. 정말 다양한 직업군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대표님의 경험에 비추어 보실 때, 석/박사과정 학생이나 연구자들이 학계 밖의 진로를 탐색할 때에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어떤 것이 있는지, 몇 가지를 조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석/박사 과정에서 학문트랙과 비학문트랙을 미리 결정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직업군을 정하기가 어렵더라도, 취업을 할지 더 연구할지만 결정을 해도 거기에 맞춰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더 쉽게 진로를 구체화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처음부터 취업이 목표였기 때문에, 학술지 논문투고보다는 학위논문 퀄리티에 더 많은 공을 쏟았습니다. 취업 시장에서는 논문 투고도 중요하겠으나, 외부에 나가 발표를 하면 학위논문 발표를 듣는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한 연구 내용, 연구에서 어떤 일을 중점적으로 했는지를 경력 기술서로 정리하는 작업을 미리 진행해두었고, 지금도 늘 업데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학문 트랙이건 비학문 트랙이건 공통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능력은 말하기, 그리고 글쓰기 능력입니다. 어느 곳으로 가든 보고서 작성과 발표는 필수이기 때문에 특히 취업을 고려한다면, 이 두 가지는 필수 덕목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학계에 계시다가 외부로 나가신다면, 과학적 가치와 비즈니스가치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하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실제로 기업으로 오신 분들 중에는 과학적 가치만 높으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리 학문적 가치가 있는 기술이라도 실용화 과정에서 비즈니스 가치가 없으면 도태됩니다. 이 부분을 놓치고 창업을 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비즈니스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꼭 가지시고, 주변의 의견을 잘 경청하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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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인 대표님, 인터뷰 감사합니다! 학계 밖의 직업, 경력을 탐색 중인 많은 연구자 및 석/박사 대학원생 여러분들에게 영감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윤정인 대표님의 또 다른 연구 스토리가 궁금하시다면 <엄마 과학자의 생존기: 내 배는 누가 지켜주나>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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