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들을 보는 일반적인 시각은 실험실과 상아탑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 은둔하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연구자, 정치 지도자 및 대중 사이의 상호작용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언론에서는 거리로 나와 과학 관련 사태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는 연구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아마도 권력을 가진 자들이 과학에 대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자각에서 촉발되었을 것입니다. 과학 및 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면서 과학계는 비과학계와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강력한 촉매로 작용하여 연구자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스스로 나서도록 만들었습니다. 과학 고문을 임명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트럼프는 공중 보건이나 국방 및 과학 예산의 주요 결정 과정에 과학적 조언과 전문지식을 수렴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점차 커져 연구자와 일반 대중의 지지를 모두 받은 과학을 위한 행진(March for Science)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연구 기금 부족에 항의한 칠레 연구자들의 공공 시위, 열악한 고용 안정과 연구 기금 문제에 항의한 스페인 연구자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연구 기금 축소에 항의한 인도 연구자들 등 전 세계적으로 여러 시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으로 연방 정책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최고 연구위원이자 국제 칼럼니스트인 Moisés Naím은 대규모 시위가 정부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할 수는 있어도 정치적 개혁을 보장할 수는 없다는 의견입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시위를 조직하는 것은 쉽지만 진정한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달성하려면 거리의 집회를 정치적 변화와 정책 개혁에 활용할 수 있는 구식의 영구적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워싱턴 대학교 경영대학 전략경영학과의 Abhinav Gupta 조교수도 단순한 시위만으로는 정책 변화를 이끌지 못할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는 근거 중심 교육(evidence-based education)을 이용하여 대중과 관련 기관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캠페인의 더 큰 목표를 성취하는데 더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연구자들은 단순히 시위에 참여하는 것 이상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의 주된 두려움은 정치적으로 얽힌 문제에 관여하여 신뢰를 잃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이 정책 결정에 발언권을 얻는 것은 왜 중요하고 또 얼마나 중요할까요? 연구자들은 사실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의사 결정에 대한 찬반 견해를 제공할 수 있으며, 정치 및 경제 문제에 대한 과학적 관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웨이크 카운티 교육위원회(Wake County Board of Education)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화학과의 James Martin 교수는 연구자들의 관점은 “민주적 통치에 매우 귀중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학계와 공직의 문턱을 넘나 들은 개인적 경험을 말하며 Martin 교수는 정책 입안에 참여한 것이 동료와 더 넓은 공동체의 신뢰를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사람들은 그를 집중하지 않는 학자로 보지 않았고 학생들도 그의 참여를 그가 자신의 교육에 신경 쓰는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화학자이자 펜실베이니아 전 의원 후보자인 Shaughnessy Naughton도 비슷한 견해입니다. 그는 “자신의 배경과 훈련 덕에 오늘날의 긴급하고 복잡한 환경 및 기술 문제에 과학적 관점을 접목해야 하는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국회의원들은 중요한 문제들을 과학적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구체적 증거와 분석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훈련된 연구자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충분한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왜 오랜 기간 대중과 정치 모두와 관계를 맺는 것을 피해왔을까요? 이러한 태도의 저변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의 주된 두려움은 정치적으로 얽힌 문제에 관여하여 신뢰를 잃는 것입니다. 연구자들 사이에는 연구자는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고 정치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상당히 뿌리 깊은 믿음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California Academy of Sciences)의 Jonathan Foley 이사는 이러한 믿음을 떨쳐내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결국, 정치는 민주 사회에서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고 과학은 경제, 보건, 안전, 미래 등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입니다. 이에 덧붙여 “과학과 정치는 서로 분리할 수 없고 이를 시도하는 것도 어리석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와 가장 관련 있는 사례로 연구자와 정치인이 모두 참여한 기후 변화에 대한 세계적 논의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매우 바쁘고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논문을 출판하기 위한 극심한 경쟁에서부터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는 연구 보조금을 얻기 위한 과정과 일과 개인 생활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까지 매일 연구자들은 이 모든 것에 대처하며 살고 있습니다. “과학자 대부분은 공적 담론 및 정치적 담론에 기여하는 부분에 있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고 경험도 부족합니다. 이러한 점은 학자 경력의 모든 단계에서 인센티브가 부족하기 때문에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박사과정 학생인 Ploy Achakulwisut의 말입니다. 연구자 대부분은 이미 자신의 업무로 바쁘고 비과학적, 정치적 단체와 소통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는 또 다른 업무를 맡는 것을 꺼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학의 현재 지형은 지식인들이 권력을 가진 자들과 좀 더 가까이 상호작용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연구자가 본격적인 정치 경력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경력을 뒤로하고 떠나거나 뒷전에 두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Virginia Gewin이 기사에서 말한 것처럼 정치인의 자문위원이 되거나 기관 위원회의 일원이 되거나 더 나아가 안식년을 얻어 정치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정치적 활동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우주를 이해하고 동시에 이 땅에서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인류의 탐구 활동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길로 나아가기 위해 연구자와 정책 입안자와 대중은 서로 이해하고 합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안전지대에서 물러 나와 좀 더 정치적으로 활발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전통적 역할을 확장하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