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자마자 수상자들은 엄청나게 바빠집니다. 연구기관, 학회, 라디오나 TV 쇼에서 대중강연 초청을 잔뜩 받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사업가, 정책담당자, 정치인을 만나야 합니다. 노벨상 수상자 중 많은 수가 학술계에서 탄탄한 지위를 얻고, 심지어 정부의 고위직을 얻어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플루토늄(핵폭탄의 연료)을 발견한 공로로 1951년 노벨상을 받은 Glenn Seaborg는 미국 핵에너지위원회 회장직을 맡아 10년간 재직했습니다. 바이러스학자인 Dr. J. Michael Bishop과 Dr. Harold Varmus는 1989년 인간과 동물의 모든 세포에 존재하는 암 유발 유전자를 발견한 공로로 공동으로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Bishop은 지금까지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총장으로 재직 중이고, Varmus는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이 되었습니다. Varmus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노벨상을 받고 나서] 내 인생은 극적으로 변했다. 학계의 평범한 과학자였던 내가 갑자기 리더가 되었다. 예전에 한 번도 국가적인 이슈에 개입한 적이 없었는데도, 정부의 과학 정책 자문을 맡기도 하고 의회에서 증언하기도 했다.” 이렇게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Bishop과 Varmus 모두 연구를 이어갔고 소속 기관에서 개인 연구실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수상자가 처음에 가졌던 연구라는 열정과 공적인 삶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지는 못합니다. 2001년 노벨화학상 공동수상자인 Ryoji Noyori 의 삶은 노벨상 수상 이후에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상을 받기 전에 나는 나고야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을 받고 난 뒤 Noyori는 완전히 연구를 그만두고 정부를 도와 일본의 과학연구와 교육의 지형을 개발하는 데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Noyori처럼 노벨상을 받고 삶의 초점도, 사명도 극적으로 변한 사람들은 또 있습니다. 1996년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 Harry Kroto는 자신은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하느라 바쁜데, 그중 일부는 아예 과학과 무관하다고 말합니다. 주어진 책임이 너무 커 강의 외에는 무슨 일을 할 시간이 없고 과학 연구는 아예 뒷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끔 (노벨상을 받은) 그 발견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행복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슬픈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노벨상은 수상자를 대하는 다른 사람의 태도를 바꿉니다. 노벨상 수상자라 해도 뛰어난 과학자일 뿐인데, 모든 주제에 대한 권위자라는 대접을 받고 심지어 전공분야와 상관없는 주제에 대한 의견에도 힘이 실리게 됩니다. 수상자의 말 한마디가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바람에 의견을 이야기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지요. 2011년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 Brian Schmidt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노벨상을 통해 내게는 과학을 대변할 수 있는 목소리가 생겼다… 노벨상 수상자이기에 내 관점은 공적인 토론으로 바뀐다… 나는 이 목소리를 책임감 있게 쓰려고 애쓴다.”
노벨상을 통해 수상자는 명예와 인정을 얻게 되지만, 여기에도 힘든 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켜왔던 연구에 대한 헌신적인 자세와 새롭게 생긴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전공 분야가 아닌 분야에 관여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 핵심입니다. 1974년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 Anthony Hewish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는 주의가 필요하며 너무 많은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함께 물리학상을 받은 Frank Wilczek은 이 문제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노벨상 수상의) 가장 큰 단점은 우리가 거부할 수 있는 유혹이다. 특히, 월계관에 안주하고자 하는 유혹과 거창한 문제에 대해 거들먹거리며 의견을 말하고 싶다는 또 하나의 유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