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part 1에서 헌트 박사님의 노벨상 수상 경험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인터뷰 part 2에서는 헌트 박사님의 연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 생물학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들어 보았습니다. 헌트 박사님은 연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답을 찾고 싶어 할 만한 “좋은” 연구 질문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시간 안배도 중요합니다. 연구자는 한 연구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쓸 수도, 너무 적은 시간을 쓸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헌트 박사님은 또, 아무리 혹독한 비판을 받더라도 연구자라면 자신의 연구에 100% 확신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남겼습니다.
헌트 박사님, 박사님의 연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어떻게 생물학이라는 분야, 특히 세포 주기조절에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학창 시절이나 생물학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저는 옛날부터 늘 과학자가 꿈이었습니다만, 생물학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11살인가 12살 때 생물 시험을 아주 잘 봤습니다. 아마 전교에서 13등, 14등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제야 제가 생물 과목을 잘한다는 걸 깨달았지만, 사실 딱히 좋아하거나 즐기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물리학자나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라디오를 분해하거나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으니까요. 하지만 잘하지는 못했죠. 그래서 제가 생물 과목을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을 계기로 생물학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그냥 여러 가지 시험을 통과했을 뿐이고요.
또 하나 저에게 동기를 부여했던 요인은 좋은 스승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6학년 때 화학을 아주 쉽게 가르쳐준 정말 좋은 화학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또, 생물학이나 화학을 연구하는 사람 중 많은 수가 보통 50대에 생화학자가 됩니다. 그런데 저와 학창시절 두 친구는 처음부터 생화학을 연구해서 결국 생화학자의 길을 걸었지요. 저희의 생각에는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가 생화학인 것만 같았습니다. 즉, 현재 분자생물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이 등장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저희가 감지했던 것이지요.
저와 친구들은 함께 캠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예를 들면, 생리학 강의에서 여러 가지 세포 실험을 했는데, 이 실험은 생물들이 여러 가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비교하는 무척추 동물학 (invertebrate zoology) 강의에서 배운 지식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인간의 생리학을 곤충 생리학, 달팽이 생리학과 비교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과목들을 강의한 교수들은 모두 강력한 철학적 접근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과목 중 한 과목을 가르친 강사는 조너선 밀러(Jonathan Miller)를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전에 우연히 밀러 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특이한 목소리를 가졌던 선생님 한 분의 목소리를 기가 막히게 흉내 내시더군요. 아, 그 시절이 참 좋았지요!)
동물학 개인지도를 처음 받을 때, 교수님이 저희에게 대학 졸업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셨습니다. 저희 셋 다 딱히 생각해본 것이 없어서 수줍어하면서 “교수님, 저희는 그저 연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지만, 당시에는 연구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죠. 그냥, 연구자의 길을 걷는다는 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저희는 사실 연구자로서의 커리어가 가능한지에 대해 딱히 진지한 걱정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맹신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연구를 통해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지 훨씬 더 많이 걱정합니다. 옛날에 연구란 일종의 야망에 가까운 일이었고, 오늘날 연구는 그보다는 훨씬 많은 의미를 띠지요.
세포주기 연구에 뛰어드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제 커리어가 몇 가지 행운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동시대 연구자들이 생화학을 선택한 게 행운이었습니다. 그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할 발견이 여럿 기다리고 있었기에 연구를 하면 할수록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세포주기 연구자가 되기 훨씬 전의 일이지요. 돌아보면, 제가 세포주기 연구와 같이 특수한 분야에 종사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시절엔 세포주기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말입니다!
성게 알 연구를 시작하고, 성게 알이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저는 세포주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즈음, 버클리대 교수 John Gerhart의 세미나에 참석해 “MPF” 즉 성숙촉진요인(Maturation Promoting Factor)이라는, 식세포(phagocyte)가 프로제스테론에 반응해 성숙할 때 나타나는 마법 같은 물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Gerhart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 물질은 세포주기 조절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이 분명했지만 저희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MPF는 정제가 어렵지만 저는 정제를 시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정제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저의 성게 연구, 그리고 Gerhart 교수의 세미나를 통해 흥미가 생긴 저는 세포 분리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Woods Hole Oceanographic Institution에 소속되어 있던 어느 여름, 성게에게 MPF가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불가사리에게 MPF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성게에게도 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성게에게서 MPF를 찾는 분석을 설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즉 제 연구 초점은 달랐지만-당시에 단백질 합성 제어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우연히 세포 주기 연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지요.
세포주기 연구 이전에는 헤모글로빈 합성을 연구하셨는데,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신기하게도 제가 헤모글로빈 합성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캠브리지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던 시절 Vernon Ingram의 헤모글로빈에 대한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이 강연이 너무 흥미로워서, 저는 헴(heme)이 헤모글로빈 합성을 어떻게 제어하는지를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는 Ingram의 연구 분야에 속했습니다. 또, 지도교수인 Asher Korner 교수가 제자들에게 늘 자신만의 연구 질문을 찾아 원하는 주제를 연구하라고 의욕을 불어넣어 준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교수가 단 한 가지 원하는 바는 우리 랩실에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는데, 제 랩실 동료 Louis Reichardt가 저의 헤모글로빈 합성에 필수 요소였던 토끼의 망상적혈구(reticulocytes)를 만드는 법을 학부 프로젝트의 일부로 배웠던 것 역시 큰 행운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동료인 Tony Hunter와 함께 헴이 부족할 때 리보솜이 행렬을 이루는가에 대한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Ingram은 리보솜이 행렬을 이룬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단백질은 헴이 들어갈 수 있는 일종의 주머니를 생성합니다. 하지만 헴이 부족하거나 없을 시에는 리보솜은 주머니가 찰 때까지 기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알고자 했던 문제는 리보솜이 그 주머니가 찼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가진 연구 질문은 급진적으로 들리지만, 결국 이론 자체가 틀렸다는 사실, 즉 리보솜이 행렬을 이루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습니다. 방법론이 행렬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섬세하지 않을 가능성을 고려해 일부러 행렬을 생성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행렬을 찾아내겠다는 기대를 품은 채로 연구한다면 그러한 결과를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사용했던 방법론은 조악했지만, 오늘날의 기술이라면 그 질문에 더욱 정확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 행렬 이론을 성공적으로 반박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한 번의 행운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 깜박하고 원심분리기를 끄지 않은 채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돌아온 것입니다. 이 실수를 통해 알파 사슬은 베타 사슬의 경우보다 더 작은 폴리솜에 생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가 저희가 처음 발표한 <네이처> 논문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흥미로운 발견을 한 것은 맞지만 제가 기초적인 제어 실험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그 과정을 잘못 설명했습니다. 나중에 Harvey Lodish가 저희 연구의 오류를 발견하고 정정해 주었습니다.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은, 발견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실수를 저지르고 무작위로 이것저것 들쑤셔본 다음이라는 겁니다. 실험에서 사소한 실수를 저질러도 괜찮습니다. 놀라운 발견을 할 기회가 생긴 셈이니까요. 고정된 방식에 몰두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데 그칠 뿐입니다. 연구의 목적은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발견하는 데 있는데 말입니다. 한편으로 헤모글로빈 합성 연구를 하는 동안 알게 된 것은, 생화학 연구를 위해서는 가장 사소한 기술적 세부사항 하나하나도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예 연구를 시작하지도 못합니다.
헌트 박사님, 커리어를 행운의 연속으로 보시는 관점도,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게 된 것도 모두 흥미롭습니다. 성공적인 연구자라면 다 박사님처럼,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실수를 저지르고,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고, 즉흥적으로 행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합니다. 박사님께서는 연구의 목적이란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연구 질문 선택에 대한 질문이 남습니다. 연구자들이 좋은 연구 질문을 찾을 때 부딪치는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연구 질문을 찾기는 어렵고, 연구자에게 늘 운이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경험을 통해 저는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측면은 탐구할 만한 좋은 질문을 찾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a) 재미있는 질문이면서 (b) 중요한 질문이고, (c) 사람들이 그 답을 알고 싶어 할 만큼 흥미로운 동시에 (d) 실제로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라는 요건을 모두 갖춘 질문을 찾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또, 연구자는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질문이란 하룻밤을 새우면 답을 찾을 수 있는 사소한 질문도 아니지만, 인생을 바쳐도 풀기 어려운 영원한 질문을 말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원칙적으로 말하면, 큰 질문을 하나 갖되 그 질문을 작은 질문들로 쪼개서 3-5년에 해당하는 연구비 지원 기간에 하나씩 풀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1968년부터 풀타임으로 헴을 연구했고, 문제의 해답은 1975년에 찾았습니다. 즉 이 문제를 풀기 위해 7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연구했지만, 저희는 이 문제에 해답이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기억나는 점은, 연구를 시작할 때 일단 어떻게 연구를 진행할지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배경 연구를 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던 점인데, 보통은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저희는 주요 질문에서 자꾸만 곁길로 새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제어에 대해 연구를 하자 이와 관련된 메커니즘에 대해 신선한 통찰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만약 내가 찾아낸 연구 결과가 기존에 받아들여진 연구에 정면으로 반박할 경우 저널 리뷰어를 비롯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판을 받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연구결과를 100% 확신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가장 가혹하게 비판한다는 자세를 가지십시오. 다른 사람이 연구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연구를 깎아내리는 것에 비하면 그쪽이 낫지요.
헌트박사님의 당시 노벨상 수상 기분이 궁금하시다면 해당 기사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